너무나 사랑해서 하나가 되어버린 그 이름...‘부부’
6쌍의 부부에게 들어보는 시대별, 세대별 부부양상
오는 21일은 부부의 날이다. 둘(2)이 만나 하나(1)가 된다는 부부의 날. 예로부터 부부는 일심동체라고 하였지만 결혼하자마자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다. 그 과정은 길고도 험난하다. 꿈결같이 행복한 순간이 있는가하면 뜻하지 않은 고비를 겪고 좌절하기도 한다. 결혼을 해서 부부로 산다는 것은 이러한 행복과 불행의 고개를 오르내리는 시험장이기도 하다. 이렇게 지난한 과정을 거쳐 마침내 ‘하나’라는 고귀한 결정을 얻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부부의 날을 맞아 결혼 1년차부터 5년차, 10년차, 20년차, 30년차, 40년차에 접어든 여섯쌍의 부부로부터 그들에게 부부란 무엇이고 어떤 의미인지 들어보았다. 이들 부부의 이야기를 통해 부부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짚어보길 바란다. 참고로 인터뷰에 응해준 6쌍의 부부는 전주에 거주하며, 부득이 가명을 사용한 점을 밝혀둔다.
1년차, ‘사랑밖엔 난 몰라’
인후동에 사는 이현표(29), 김성미(28) 부부는 결혼 11개월차다. 신혼도 한창 신혼이다. 소위 남들이 말하는 깨볶는 고소한 냄새가 인근지역에 파다할 정도로 달콤한 신혼을 보내고 있다. 이들에게 부부의 의미는 사랑하는 관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연애 1년만에 결혼에 성공했지만 아직까지 낯을 붉히거나 큰소리를 내면서 싸워본 기억이 없다. 행복에 겨운 이들 부부를 보면 장밋빛 미래만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 분위기다. 요즘 불륜을 다루는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남의 얘기같다고 이현표씨는 말한다. 아이 때문에 함께 산다는 부부들을 이해할 수 없단다. 그리고 그들은 서로 싫증나면 언제든 서로 상대방에게 솔직하자고 약속했단다. 아직 아이가 없는 이들 부부는 아직은 신혼생활을 실컷 즐긴 연후에 출산계획을 세워도 되지 않겠냐고 되려 반문한다. 결혼 1년차인 신세대 부부인 이들에게 출산은 어디까지 선택사항일 뿐이다.
5년차, ‘단 하루라도 가사와 육아로부터 벗어나고파’
4살, 3살난 아들 두형제를 키우고 있는 이윤주(34)씨의 요즘 가장 큰 소망은 그리 거창하지 않다. 남편과 아이들 없는 곳에서 딱 일주일동안 잠만 실컷 자다오는 것이란다. 이 말에 남편 박기창(35)씨도 의미있는 웃음을 짓는다. 아마 자신도 마찬가지 입장이라는 듯한 표정이다. 직장에서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고 집에 돌아오면 개구쟁이 두 아들과 놀아줘야하는 남편의 입장도 결코 부인못지 않게 피곤하다. 출산과 자녀 양육에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이들 5년차 부부는 서로에게 진한 애정표현을 하는 것도, 칭찬을 하는 것도 잊어버리고 산 지 오래다. 취미생활을 함께 한 게 언제였는지 생각해보면 까마득하다. 어쩌다 둘이서만 외출을 하는 경우 남편의 팔짱을 끼는 일도 새삼스럽다는 윤주씨. 첫아이 낳고 젖몸살로 고생하는 부인 옆에서 잠만 잤던 남편의 모습은 지금 생각해도 원망스럽단다. 그러나 첫아이 가졌을 때, 순대가 먹고싶다는 아내의 말에 눈길을 헤치고 나가 눈사람의 모습으로 순대를 들고 나타난 남편의 모습을 생각하면 그 원망도 봄눈 녹듯 사라진단다.
10년차, ‘미운정도 고운정이 되는 시기’
“결혼 10년이라” 이상철(39) 유은주(37)씨는 “벌써 우리가 그렇게 됐나?”며 새삼 놀란다. 결혼 초는 어느 부부나 서로가 적응하고 맞추어 가는 과정에서 부부싸움도 꽤나 한다. 이들부부에게 부부싸움을 가장 심하게 한 적과 어떻게 극복했냐는 질문을 했다. “싸움이라는 것이 아주 사소한 것에서 커지는 것 같다.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싸움의 시작이 된다. 남편은 권위적이어서 집안일은 커녕, 소리지르는 것도 이해하지 못했다. 결혼 초는 함께 맞벌이를 해서 서로 가사일도 분담하기를 원했다. 그러나 남편의 생각은 달랐다. 그래서 서로 자기의 생각만을 얘기하다보니 싸움까지 갔고, 일주일 정도 말을 하지 않았다. 그 일주일간 결혼 생활이 이런거야? 라는 회의도 들고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그런데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고. 시간이 가고 남편이 먼저 화해를 신청하자 자연스럽게 마무리가 되었다” 10년이 지났지만 이들 부부는 지금도 깨가 쏟아지는 신혼 같다.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에 사랑이 가득 담겨 있음을 볼 수 있기 때문이랄까.
20년차, ‘얼굴만 봐도 무슨 생각하는지 안다’
양인식(48) 이명순(43) 부부는 올해 결혼 20년차다. 아이들이 대학생과 고등학교 2학년이다. 이 부부가 살아가는 요즘생활을 들어보았다. 아이들이 자라서 인제 일일이 부모의 손을 필요로 하지 않아 요즘은 둘만의 시간을 많이 갖는다.
결혼 초와는 달리 요즘 양인식씨는 퇴근한 후 저녁시간에 아내와 함께 마트에서 장보기도 하고, 쇼핑도 즐긴다. 사실 요즘은 남편 양인식씨가 더 쇼핑을 즐긴다고. 휴일엔 가족과 함께든 둘이든 등산을 간다. 운동도 부부가 함께 한다. 양인식씨와 이명순씨는 여행을 자주 가는 편이다. 올봄엔 가족들이 시간을 맞추어 제주도에 다녀왔다. 다른 부부도 그렇겠지만 결혼 20년이 되고 보니 서로의 얼굴만 봐도 상대방이 무슨생각을 하는지, 뭐가 필요한지 안다고 한다.
30년차, 우리는 서로의 동반자이자 후원자‘
이덕수(65), 허은옥(61)부부는 올해 결혼 35년을 맞는다. 세월이 어떻게 지났는지 옛말 그른 것 하나 없다고 미소 짓는다. 이덕수, 허은옥 부부에게 결혼생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제일 기억에 남있던 일이라. 어떻게 하나만 있을 수 있겠냐. 가장 먼저 첫 아들을 낳았을 때 정말 기뻤다.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았으니까. 우리는 애들 키우고 먹고 사느라 참 바쁘게 생활했다. 요즘하고는 또 다르지... 그 다음엔 남편이 몸이 아파서 이리저리 병원다닌 것이 기억에 남는다. 그땐 정말 남편이 세상 떠날 것 같았다. 지금 그때만 생각하면 아찔하다. 그러나 이렇게 함께 살아갈 수 있어서 늘 하나님께 감사한다” 고 말한다. 이덕수, 허은옥부부의 요즘 생활은 서로의 일을 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배려한다. 무엇이든 할 수 있고, 하고 싶은 일은 서로가 돕는다. 이덕수씨는 허은옥씨가 교양강좌나 붓글씨 등 하고싶은 일이 있다면 뒤에서 든든한 후원자가 된다. 결혼 35년. 이들 부부에게서 살아온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온다. 어떻게 보면 두 사람이 서로 하나인 듯 하다.
40년차, “다시 태어나도 당신만을”
삼천동에 사는 신정근(76)씨와 박현숙(72)부부는 지난해 결혼 42주년을 맞았다. 결혼한 해에 낳았던 큰아들이 올해로 42살이다. 몇 년 더 있으면 금혼식을 맞이한다. 부부는 약속했다. 그 때까지만이라도 건강하게, 정신 놓치말고 잘 살자고. 이들 부부의 요즘 가장 큰 소원은 마지막 가는 길을 곱게, 흉하지 않게 갈 수 있는 것이다. 작년 윤달이 든 해에 부부의 수의도 미리 준비했단다. “내생에 태어나면 다시 또 결혼할 거냐구? 에이, 당치도 않은 소리...”라며 박씨는 말을 흐리지만 그 이면에는 왠지 모를 아쉬움이 묻어있다. 싫다는 박씨와는 달리 남편 신씨는 “다시 태어나도 나는 오직 당신뿐”이라고 말한다. 그말에 박씨는 짐짓 눈을 흘기지만 온전히 싫지만은 않은 듯 하다. 박씨는 연애시절 남편으로부터 받은 연애편지를 아직까지 간직하고 있다. 바래다 못해 닳아없어질 듯 낡아있는 그 편지에는 만년필로 ‘사랑하는 현숙양’이라고 씌여있다. 그러나 이제 ‘사랑하는’이란 말은 이 부부에게 필요없을 듯 하다. 오히려 거추장스럽다. 사랑한단 말 대신 서로 등 한번 긁어주고 눈길 한번 마주치면 그것으로 충분할테니 말이다.
**
참고로 인터뷰 기사 작성을 위해 주위의 몇분이 도움말씀을 주었습니다. 정리는 제가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