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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4학년 2학기 옛도읍지와 문화재 단원중 서울(위례성)의 문화재-백제편에 실려있기도한 이 적석총은 참으로 가까이 있는 문화재이다. 전국 각지의 문화재와 박물관들 일일이 외우기조차힘이 들어 4학년 사회부터 어려웁다는얘기가 회자되나. 가까운 곳에 있는 문화재 하나라도 실제 견학과 답사를 거쳐본다면 아이들에겐 무엇보다 생생한 역사공부가 될것이다.
3호분은 5단 이상으로 추정되며 3단 중앙에 석곽이 위치하는데 그 규모의 웅대함이 광개토왕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장군총보다 크고 고구려 기원전.후부터 나타나는 고구려 무덤 형식인 기단식적석총(기단식 돌무지 무덤)의 형식이여서 고구려 유민이 백제를 건국하였다는 삼국사기의 기록을 뒷받침하고 있다 한다.
또 주변의 백제 초기 유물들(가락동.방이동 고분군)로 미루어 초기 백제 성곽축성시대인 A.D.3세기 중엽의 초대형급 적석총으로서 근초고왕(346~374)의 능일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아직은 추론 단계라는데 활발한 연구로 잠들어 있는 위대한 왕의 전설이 깨어났음 하는 바램도 가져보았다.
적석총 4호분은 발굴 당시 원형의 겉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하는데 속에는 진흙을 메운구조로3호분과 달리 고구려식이 아니고 한강유역에서 지역화한 양식이란다.
어쨌거나 3호,4호분 주위에는 이렇다할 안내표지판이 없어 맘먹고 답사하러 오는 이가 아닌 다음에는 알아낼 길이 묘연하니 미흡한 관리에 씁쓸한 마음 가득했다.

(제2호분)
석촌동 제2호분앞에는 안내판이 있다.열심히 설명을 읽으며 옛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본다.
 (석촌동 제2토광묘)
제2호분 앞에 있는 토광묘로 생토층을 파서 묘광을 만들었는데 이러한 구조의 토광묘는 제 3호분과 근접한 동쪽 지점에서 10여기가 발굴 되었고 적석총보다 아래층에 위치한 점으로 미루어 적석총보다 앞선시기의 묘제였던 것으로 추측한다.

(↑내원외방형 적석총)
시기는 알 수 없다하고 그 형태가 많이 파괴되고 위에 민가가 들어서 있던터라 복원후 정비하니 안은 원형을 이루고 밖은 방형을 이루었고 원형 안에 적석 토광묘 2기와 석관묘 3기가 드러나 그위에 적석총이 축조된것으로 추측한다.

(↑석촌동 제1호분)
제1호분 역시 파괴된 고분위에 흙이 덮이고 민가가 들어서 상부구조는 알 수 없으나 발굴조사당시 드러난 바에 의하면 2기의 고분이 합쳐서 이루어진 쌍분(雙墳)으로 추정한다.

(↑석촌동 제 5호분)
이 일대에 남아있는 보존상태가 양호한 유일한 봉토분으로서 그 보존유지를 위해 분구(墳丘)일부만 발굴하고 내부는 확인하지 않았다 한다.


그 옛날 웅장하고 경외스러웠을 조상들의 성지에서 아무 근심없이 구구거리며 노닐고 있는 무심한 비둘기!그들을 바라보니 천칠백여년의 시공이 그저 아련할 따름이다.
얼마나 숱한 기쁨과 질곡과 상처들이 이 터전위를 지났을까? 아파트와 빌라에 둘러싸인 이 사적은 3월 따사로운 봄볕에 간간히 산책과 운동을 즐기는 사람들로 고요한 적요(寂寥)를 떨치며 천수백년전의 위용을 설핏 내비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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