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율에 대해서 한국도 이미 고민의 단계에 들어섰다. 출산에 대해 고민하는 정부 소속기관들도 생겨나고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고육책들이 등장하고 있다. 특히 직장과 육아의 병행 사이에서 출산율과의 연관성도 간과할 수 없기에 직장 내 보육시설 등 직장맘들에게 더 이상 출산과 육아가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배려하는 사회분위기 조성에 박차를 가한다.
물론 예전 나이 드신 분들의 농삿일을 할 때 아기를 논둑 옆의 나무에 줄로 매달아놓고
자리 하나 깔아놓고 일할 수 있는 사회시스템도 아니고...
지금의 직장 내 보육시설 확충이 옛날 시대 논 옆에 자리 깔고 갓난아기 젖먹이다 일하던 것의 발전된 형태라고 할 수 있지만, 직장 내 보육시설이 보편화되지도 않은 실정이다.
어찌됐든 저 또한 육아와 직장을 병행하기 힘들어 직장을 포기한 경우인데, 대부분 엄마들이 두 가지를 병행할 수 없고 한 가지를 굳이 선택하라고 한다면 당연히 육아를 선택하리라 생각한다.

** 아이들이 국가의 미래다
부득이 육아가 아닌 직장을 선택한 경우는,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 이런 이유를 들 수 있을 것 같다.
1) 엄마의 역할을 감당해줄 대리인이 확보된 경우(친척 등등)- 물론 이 경우도 엄마가 육아를 해야한다는 부추김에 자유로울 순 없다. 어느 질좋은 보육시설도 엄마의 손에 비길 수 없다는 지고지순한 진리에 번민에 빠질 수도...
2) 육아휴직 또는 퇴직으로 인한 손익이 현저히 차이날 경우- 예를 들어 승진문제나 정말 다시 얻기 힘든 좋은 직장이라는 주변의 부추김 등등(그러나 정작 본인은 잠깐만 참으면 된다는 주변의 독려와 아이 기르는 것도 한때인데 아이에게 전념하라는 만류에 의한 딜레마)
3) 내가 벌어야만 하는 경제적 이유- 물론 보육비와 출근비용 및 출근에 따른 의류비 지출 및 관련 비용 산정해 아이 기르는 것이 오히려 수지타산에 맞다는 자괴감에 빠질 수도~
4) 남편의 은근한 부추김과 대의명분적 자아실현- 표면적 동기일 수 있다. 대의명분적 자아실현의 깊은 내면 속에는 경제이득이라는 목적이 도사리고 있음.
그러나 위의 경우에도 불구하고 직장을 선택한 이들은 잠재적 피해의식이 있기 마련이다. 때로는 육아와 직장을 하나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는 자괴감과 딜레마에 빠진다. 나의 경우도 이러한 이중고에 시달린 적이 있다.(큰아이가 어린이집에서 자고 있다가 책상이 얼굴로 떨어져 이마가 심하게 찢어진 사건을 통해 과연 나의 사회생활이 누구를 위한 것인가 깊이 고민하게 된 계기임. 결국 퇴직으로 이어졌지만...)
또한 상대적으로 직장모들은 전업모들에 대한 부러움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집에 안주하게 되었을 때 도퇴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갖는 것 같다.(여기서 도퇴는 자기발전에 느슨해지는 것을 의미함) 주변에 직장모들을 보면, 대체적으로 그런 이유에서 직장을 놓지 못하는 이유도 부가적으로 있었다.
이것은 미세하게 출산율과 연관이 되어 있는데, 만약 직장을 다니다 아이를 더 낳게 되면 가정으로 돌아가게 되리라는 불길함이 작용하기에 이중적 딜레마 속에서 갈팡질팡하다 의식적으로 임신의 기회를 놓치는 경우가 있다.
그렇다면 육아에만 전념하는 전업모들은 출산율이 높다는 의미인가. 그것은 비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상대적으로 전업모들은 반대급부적으로 아이를 빨리 키워서 제2의 사회진출을 꿈꾸고 있다.
점점 모계 위주의 사회가 되면서 여성의 경제력이 자존감과 연관된다는 것을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비근한 예로 직장을 다니면서 친정에 대한 의존도도 증가함과 동시에 친정에 대한 지원도 늘어가고 있다.
그것은 여성의 경제력의 향상과도 관련이 있는데, 그만큼 전업모들의 경우 직장모에 비해 지출에 대해 비교적 자유롭지 못하기에 위축감을 가질 수 있다.
따라서 아이의 숫자가 그만큼 늘어가면 갈수록 그 재기기간이 늦추어짐과 동시에 아이의 수에 따라서 지출되는 비용은 상대적으로 증가하기 때문에 직장모들에 비해 경제적 측면에서 상대적 박탈감이 작용한다. 어쨌든 전업모든 직장모든 육아가 삶의 카테고리 속에서 무의식적 걸림돌(?)이 되었을 때 출산율의 상대적 저하현상이 일어나는 것 같다.
이와 함께 다소 지엽적인 예지만 아기가 5세가 되기 전까지 엄마의 도움이 절실하기에 한창 젊은 나이에 외형상 매력적인 여성을 꿈꾸는 것은 조금 미뤄야하는 입장이다. 나의 예를 들자면 둘째아이가 32개월인데, 아직 아기의 때를 벗진 못한 편이다. 얼마 전 모처럼 정말 오랜만에 벨벳스커트와 구두를 신고 외출하는데(평상시엔 트레이닝 차림이지만...) 같이 만났던 나이드신 한인 아주머니가 “애기 키우면서 불편하지 않냐”는 언급을 하는 것이다. 정말 아기 키우면 멋도 내기 힘들다는 것... 물론 나도 불편하지만 말이다. 젊음도 한때인데, 사실 아이 다 키우고 나면 나이도 들어서 젊어서 입고 싶은 옷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서 어쩌면 젊은 여성의 결혼연령이 한없이 올라가는 것은 아닐까. 내 나이의 결혼하지 않은 여성은 아가씨처럼 멋스러운데, 상대적으로 난 펑퍼짐한 아주머니로 전락하는 것이 아닌가 위기감이 들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물론 전혀 거리낌 없이 당당하게 미시여성으로 멋스러운 엄마들이 많겠지만, 전업모들의 경우는 외형적으로 위축이 될 수 있다는 노파심이다. 물론 이는 지극히 외형을 중요시하는 한국적 사고임에는 틀림없다. 사실 이곳 독일은 대부분이 티셔츠에 청바지가 주류이기 때문에 누가 캐리어우먼인지 가늠이 안가는 것 같다.
너무 지엽적인 부분에 주저리주저리 말을 늘어놓았는데, 전업모와 직장모를 이분화하고 싶지 않지만, 나 자신이 직장모와 전업모를 거친 경우라서 구분해서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렇다면 출산율과는 어떤 상관관계가 있을까. 예전에 나에게 아이를 더 낳고 싶냐고 하면 당연히 ‘NO'였다. 그러나 내 핏줄로 낳은 자식은 많았으면 하는 아이러니컬한 사고방식을 가졌다. 낳아서 기르는 것은 힘들고 싫지만, 내가 늙어서 잘자란 많은 자식들의 모습을 보고 싶은 이기적 욕망 탓이다.
사실 나의 경우 아이는 한 명만 낳으려고 했었다. 몸도 약했고, 직장 다닐 때 일에 대한 소신과 자부심이 나름 있었기 때문에 육아로 인해 사회단절을 경험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모든 이유를 차치하고 나의 경우 날 설득했던 명분은 단 하나였다.
즉 '아이는 한 명은 외롭고 두 명 이상은 되어야 한다. 커서 너무 외로워한다'는 가족과 사회분위기의 부추김이 한몫했던 것 같다. 아이에게 형제를 만들어주어야 서로가 의지가 될 수 있다는 것과 부모 입장에서 한 명의 자식보다는 두 명이 위안이 될 수 있다는 보수적 관점에서였다. 그러나 그러한 명분도 두 명 이상의 자녀는 특이사항일 뿐이다. 그 명분은 다른 여타의 사회환경에 의해 잠식되어버리고 설득력을 잃는다. 물론 육아비의 지출과 ‘어떻게 대학교육까지 시켜야 하나’라는 다소 경제적 손익계산적 이유 때문에 아기 낳는 것을 주저한 것도 아니다. 난 사실 ‘아이는 제 먹을 것은 갖고 태어난다’는 다소 구태의연한 생각을 지금도 갖고 있는 사람이다. 무엇보다 앞서 언급했듯이 아기를 낳음으로 인해 육아에 매진해야 하기에 겪어야 할 사회와의 단절이 참 두려웠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직장여성으로서 휴식을 취하고 싶은 심정도 많았다. 어쩌면 가장 예쁜 시기인 아기와의 교감을 배제하며 내 인생을 후회하고 싶지 않은 부추김과 함께 치열한 직장과의 싸움에서 내가 돌아갈 수 있는 디딜 언덕인 육아가 나에겐 당당한 버팀목인 셈이었다. 그래서 타의에 의한 것처럼 자랑스럽게 ‘육아 때문’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퇴직했다. 그러나 육아는 더 치열한 전쟁이었다. 외로운 전투였다. 그래서 그 전쟁은 결국은 내 자식으로 인한 무한한 기쁨의 종말임을 세뇌하며 의롭게 치르는 전쟁이다. 여타의 희생은 부모로서 당연히 치루어야 할 관문임을... 이미 내 부모도 나에게 무조건적 희생을 감내했듯 나도 내 아이에게 아름다운 희생을 선물해야 함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지금 엄마들은 출산에 대한 딜레마에 빠져 있다.
그 출산에 대한 가임여성들의 딜레마를 정리해주고, 해결하는 것이 출산율 해결의 지름길일 것이다. 출산에 대한 몇 가지 생각을 이야기해보면,
첫째는, 엄마로서의, 여성으로서의 자존감이 더욱 향상되어야 한다. 육아 때문에 직장을 포기하고 몇 년 후 다시 복귀했을 때 임시직으로 전환되는 엄마 노동력의 무가치성에서 건져내야 한다. 이탈리아였던가(잘 기억나진 않지만). 자녀 일곱 명을 둔 여성장관의 경우 아기 낳을 때마다 자연스럽게 탄력적 근무시간을 배려해주는 직장 분위기로 일을 놓고 싶은 유혹에 빠지지 않았다고 한다. 직장과 육아라는 두 마리 토끼 중 한 마리도 건지지 못했다는 자괴감이 아닌, 먼저 한 마리 잡고 나중에 한 마리 잡았다는, 결국 두 마리의 토끼를 잡았다는 자부심을 갖도록 일반 직장내 임신여성의 탄력적 운용체제를 즉시 도입해야 한다. 또한 큰 기업만 복지혜택을 누리는 것이 아닌 어떤 기업에서나 임신여성이 혜택받을 수 있는 사회분위기 형성에 주력해야 한다.
둘째, 여성과 남성은 평등하고 물리적인 측면에서 다를 뿐이다. 서포터즈 과제를 수행하면서 인터넷을 검색하다보니 많은 직장내 가임여성들이 임신사실을 직장에 언제 아니면 정말 알려야 하는지 등에 고민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여성의 임신은 아름다운 것이며, 적극 알려야 하며, 주변의 도움이 절실히, 그리고 반드시 필요하다. 임신여성으로 인해 주변 동료들의 업무가 과다하는 것은 우리 모두가 국가미래를 위해서 짊어질 공동의 짐이고 필연적인 것이기에 당연한 것이다. 여성의 임신은 모두가 짊어질 책임이고 숙제이다. 다른 예지만, 독일의 경우 미혼여성이라도 아기를 임신하면 그 아기의 아빠를 찾아 양육비에 대한 책임을 묻는다. DNA검사를 통해서라도 그 아빠를 찾아 그 아이가 18세가 될 때까지 양육비를 물게 한다. 이는 생명의 잉태는 1차적으로 남성의 책임이라는 관점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생명에 대한 책임성을 중요시한다. 게다가 그 아이에 대해 국가에서도 책임을 지며 양육하는 시스템이다. 이렇듯 출산과 양육은 모두가 짊어질 자연스러운 사회현상이라는 관점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셋째, 최근에는 낙태에 대한 의식이 어떤지 조사결과를 알 수 없지만, 아직도 성별을 통해 낙태를 하거나 여러 이유를 통해 낙태가 암암리에 이뤄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1) 임신을 계속할 경우 다른 방식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산모의 생명 및 건강상 위험을 초래하는 경우, 2) 심각하고 해결 불가능한 태아의 건강상 위험 존재, 3) 산모가 성폭행 등으로 임신했을 경우, 4) 다른 방식으로 해결될 수 없는 산모의 심각한 사회적 어려움으로 임신 지속을 요구할 수 없을 경우에는 낙태가 가능할 수 있다. 그러나 성별을 통한 부분에 대해서는 현재 사문화된 낙태관련법을 끌어올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독일의 경우는 12주까지는 임신중절 이전에 임산부는 국가가 인정한 전문 상담소나 전문의로부터 상담 절차를 거쳐야 한다(상담에 참여한 전문의는 직접 임신중절 시술을 할 수는 없다). 이 상담은 임신중절의 이유가 있는지를 검토하는데 임산부들이 낙태 외의 다른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러나 임산부가 낙태를 결심할 경우 상담을 거쳤다는 확인서인 상담증을 받아 임신중절을 할 수 있게 된다.
현재 독일에는 총 1,700여개의 상담소가 운영되고 있는데, 이중 국가가 8백여개, 카톨릭 교회가 260여개, 개신교회가 250여개를 운영하고 있으며 나머지는 민간 단체에서 운영하고 있다. 이들 상담소는 국가의 재정지원을 받는다고 한다. 한국에 살았을 때 후배의 경우는 딸이라는 사실을 알고 아들 바라는 남편과 시아버지로 인해 낙태를 권유받은 적이 있었다. 세상은 22세기로 달리지만, 아직도 고조선시대를 걷는 이들이 있다는 것이다. 다른 심각한 이유가 아닌, 성별을 통한 낙태는 지양되어야 할 것이다.또한 낙태시에는 상담소의 상담절차를 거치는 것도 좋은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넷째, 엄마의 보육에 버금갈 수 있도록 보육의 질을 높이고, 보육비를 낮추었으면 한다.
주변에 친척이 있어 아기를 돌보아준다면 모를까 엄마의 손이 필요한 아기를 보육시설에 맡기는 부분은 다소 어려운 결정이다. 물론 보육비도 무시할 수 없다. 친척에게 맡기는 부분이나 개인 및 보육시설도 어린아기라면 그만큼 보육료가 높게 책정된다. 아기를 키우는 것이 힘든 사회생활의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보육료는 낮추고 보육의 질은 높여야 한다. 예산과의 결부가 있겠지만 그것은 꼭 필요한 사회보장 시스템이라고 생각한다.
다섯째, 가임여성의 건강검진에 대한 혜택을 고려했으면 한다. 독일에서는 35세가 되면 정기검진을 국가에서 해주고 있다. 나의 경우도 얼마 전에 종합검진을 받았다. 피검사 및 각종 검사를 받았다. 혹시 몰라서 위와 장내시경, 산부인과 및 뇌의 MRT까지도 검사받았다. 의료보험 혜택이 좋아 전부 무료였다. 물론 세금이 많이 나가기에 그만큼 복지혜택이 좋지만, 그만큼 연금혜택이 있어 노후가 보장된다.
이야기가 샛길로 빠졌지만, 여하튼 가임여성의 정기검진을 통해 전업주부 등도 국가에서 의례적으로 실시했으면 한다. 사실 집에 있다보면 크게 아프지 않으면 병원가기가 쉽지 않다. 건강한 아이 출산을 위해 가임여성의 질좋은 무료 정기검진 실시를 했으면 한다. 아이를 낳고 싶어도 몸이 약해서, 몸이 아파서 제때에 임신기회를 놓치지 않도록 배려했으면 한다.
지금까지 국가 및 사회가 가임여성에게 혹은 엄마들에게 해달라는 요구사항이었다. 그러나 지난 번에도 언급했듯이 출산은 가임여성과 배우자의 전적인 의지가 기본이다.
이 기본적인 의지는 본인에 의해 만들어지기도 하지만, 주변과 사회의 유도도 한 몫 한다고 생각한다.
어머니는 세월이 흘러도 가장 숭고한 존재다. 그 어머니가 된다는 것에 대해서 고귀한 의미로 부여하고 받아들이는 사회분위기가 되었으면 한다.
글을 쓰다보니 6남매를 낳으시고 잘 성장시켜주신 어머니께 감사를 드리며, 나도 그 어머니의 길을 잘 걸어갈 것을 다짐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