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를 가다
-곡성교육청 독서도우미 문화체험을 다녀와서
전남 곡성교육청이 주관한 독서도우미 문화체험이 5월 30일 곡성관내 독서도우미로 봉사하고 있는 학부모를 대상으로 행해졌다.
우선 목포서부초등학교 도서관을 제 1 방문지로 선정하고 이른 아침에 교육청 주차장으로 발길을 재촉했다.
들판엔 모내기를 막끝낸 논들이 때때옷을 갈아입은 것처럼 단아한 모습으로 정돈되어 있다.
11시 갓 넘긴 시각.
학생수 1600명의 적지않은 규모의 초등학교 운동장은 활기넘친다.
어린이들은 체육시간인지 운동장에서 공차기가 한창이다.
'머무르고 싶은 곳 우리학교 도서관'이라는 타이틀에 어울리는 정감어린 도서관 시설을 둘러본다.
2005년에 리모델링이 된 도서관은 쾌적한 환경 조성으로 즐겨찾는 공간으로서의 도서관 기능을 한껏 고조시키기에 충분하다.
어린이들이 장시간 책을 읽기좋게 다양한 소파식 의자와 곡선모양의 책상, 벽면을 빼곡히 매운 서가가 인상적이다.
멀티실에는 컴퓨터가 6대씩이나 있어 교사연수는 물론 학부모모임, 각종 소모임 등 다목적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고 한다.


다음 행선지는 목포근대역사관.
우리 역사의 아픔이 깊게 배어있는 동양척식주식회사 건물로서 일제강점기 수난의 역사와 1920년대말 잊혀져가는 목포의 옛모습을 생생하게 되돌아 볼 수 있는 역사인식의 산 교육장으로 전라남도 기념물 174호로 지정되었다.
사진연구가인 정성길님의 기증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일본인들에 의해 의도적으로 촬영된 지난날의 잔상들이며 30여년동안 국내외에서 수집한 영상자료들을 해설가의 안내를 받으며 둘러보았다.
36년간 일본의 식민지속에서 우리 선조들의 고통을 가늠해 보며 아픔의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올바른 역사관과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지 알것 같다.
두어 평 남짓 되는 금고는 생각보다 넓고 높아 안에 들어가니 콘크리트 벽으로 싸늘한 바람이 불어 온몸을 일시에 죄어오는듯한 섬짓함을 느끼게 한다.
광복후 동척의 후신인 신한은행의 건물로 사용되었고 70년대에는 헌병대 건물로, 518당시에는 계엄사령부 목포분소로 설치되어 목포지역 민주인사들이 수감된 장소이기도 했다는 해설가의 말에 감옥의 싸늘함이 더욱더 실감난다.


도보로 5분거리에 성옥기념관이 유달산 아래 아늑히 자리잡고 있다.
조선내화(주) 창업자이자 전남일보 발행인 성옥 이훈동선생의 88세 미수(米壽)를 기리기 위하여 2004년 자녀들이 건립했다고 한다.
전남 문화재 제 165호인 이훈동 정원과 함께 목포를 찾은 방문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문화공간이다.
성옥선생이 평생 정성들여 모아온 근`현대 서예 대가의 작품과 도자기 등 갖가지 보물들을 만날 수 있다.
막 입구에 들어서니 성옥선생의 동상이 우뚝 서 있고 응접실에는 1961년 목포에 내방한 고 박정희 대통령이 저녁만찬 후 '목포의 눈물'을 들었다는 독일제 전축이 화사한 병풍과 나란히 소파뒤에 자리잡고 있다.
옛 선인들의 작품을 감상하다 공재 윤두서 선생의 여백의 미를 한껏 살린 산수화와 나란히 서울대 김병종 교수의 강렬한 색체의 꽃이 인상적인 '생명의 노래'와 이응로 화백의 추상화가 나란히 전시되어 있는 것을 보고 감탄하지 않을 이가 어디 있을까.
요사이 추사 김정희선생에 관한 책을 읽고 있던 터에 추사선생의 작품은 물론 선인들의 한국화 하나 하나를 그냥 지나치기에는 너무나 아까웠다.
성옥선생의 저택에 들어서니 울창한 숲이 마치 한달음에 내게 덮칠듯이 밀려온다.
잘 가꾼 정원의 그늘은 곧 닥칠 여름 더위엔 효자노릇 톡톡히 하리라.
군데군데 문화재들이 눈길을 끈다.
어느 스님의 부도이련가.
장명등이 마모된 게 한 몇백년은 흐른듯 연못 둘레에 울창한 수풀이 마음을 안정시켜줄 것이지만 저 이름 모를 탑의 근원은 어디일까?
문득 대저택의 아름다운 정원에 매료되면서도 한편 씁씁한 그림자를 드리우게 하는 건 무얼까.
문화재는 본래 있었던 자리에 고스란히 남아있는 그자체만으로도 후대사람들에겐 큰 가치로 역사의 장을 장식하기도 한다.
어디서 와서 어떤 연유로 이 대저택 숲 우거진 그늘에 놓여있는 걸까?
의문은 의문의 꼬리를 물고 성옥선생이 저 무거운 돌덩이들을 운반했을 당시의 민초들 삶을 떠올린다.
역사는 아이러니하다는 말이 이럴때 어울릴까?



감상에 젖어있기에는 하루가 너무나 짧다.
우린 다음 코스인 국립해양유물전시관으로 향했다.
마침 내일이 바다의 날이라 무료로 입장할 수 있었다.
21세기 해양 시대를 맞아 세계 해양 강국으로의 부상을 위해 1996년 제정한 법정 기념일로 해양수산부가 주관한다.
바다의 날인 5월 31일은 통일신라시대 장보고 대사가 청해진을 설치한 날로 그 의미가 더욱 깊다고 하겠다.
전시관은 수중고고학 박물관으로 강이나 바닷 속에 잠겨 있는 문화 유산을 발굴하여 전시하고 있다.
1975년 신안보물선을 발굴하면서 문을 열고 1994년 국내 유일의 국립해양유물전시관이 개관되었다고 안내문은 밝힌다.
700여년간 바다속에 잠겨있던 목재 유물이 문화재로서 빛을 발하고 있다.
완도선은 고려시대 도자기 운반선으로 전남 완도해역에서 발굴된 보물선으로 우리 역사 복원을 위한 중요한 자료로서 그 가치가 매우 높다.
신안선은 1323년경 중국과 일본을 항해하던 중국무역선으로 신안 앞바다에서 발굴 보존 복원 전시되고 있다.
무역품인 중국 명품 도자기, 각종 씨앗, 향신료, 대형 원목 등은 물론 우리의 고려청자와 일본및 동남아시아 제품 등도 실려 있었다.
삼면의 바다로 둘러싸여있는 우리 한반도의 역사는 바로 이런 해양유물들을 통해서 새롭게 고증이 되곤한다.
아래 사진은 해양유물전시관 마당에 전시되어있는유물 멍텅구리배의 '닻'이다.


높은 계단을 막내려와서 횡단보도를 건너면 46억년전 공룡을 만날 수 있다.
목포자연사박물관.
인간은 거대한 자연의 역사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 정도로 너무나 초라하다.
지질관에 전시된 우주로부터 낙하된 운석을 보니 지구촌이라는 말이 더더욱 실감난다.
갖가지 광물 보물을 둘러보고 있으려니 시간가는 줄 모른다.
육상생물, 수중생물, 각종 생태의 모습을 재현해 놓은 것 또한 볼거리이다.
아이들과 함께 도시락 싸들고 와서 하루종일이라도 구경하고픈 생각이 절로 든다.
박물관 건물을 막 빠져나와 왼편에 있는 문예역사관으로 천천이 발길을 돌린다.
남농화백이 기증한 1800여점의 수석 중 대표석 100여점을 교체 전시하고 있다고 한다.
자연의 아름다움은 감히 인공의 미와 겨루길 꺼려한다.
우주 삼라만상의 형상을 닮은 기이하고도 신비스러움 앞에서 어찌 자연의 섭리에 찬탄하지 않으리.
한지의 온화한 수묵화 바탕에 '남농선생님의 돌집에'라는 제목으로 미당 서정주시인의 글귀가 눈길을 잡는다.
내가 돌이 되면
돌은 연꽃이 되고
연꽃은 호수가 되고
내가 호수가 되면
호수는 연꽃이 되고
연꽃은 돌이 되고
아침 아홉시에 출발한 관광버스는 이제 하루 일정을 무사히 마치고 왔던 곳을 거슬러 되돌아간다.
어두어둑한 저녁이 되어서야 도착한 곡성.
교육청 행사에 참여한 오늘 하루가 참으로 넉넉한 하루가 되었다.
교육은 책상앞에서 하는 것이 아니고 바로 현장에서 직접 보고 듣고 느끼며 이루어져야함을 오늘 문화체험을 통해서 절실해 느껴지는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