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에만 그런 것은 아니었겠지만 내 아이가 태어나 자라다 보니 새삼스레 조기 영재교육에 관심이 간다. 또, 얼마전 TV에서도 관련방송을 해서 다시한번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다. 부모의 욕심이라는게 끝이 없다는 걸 알기에 교육열이 조금 무모하더라도 누가 나무랄 수도 없는 일이고, 일편으로 심하다 소리를 듣고 주변의 따가운 눈총이 만연해도 이해하는 마음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나 또한 부모로써 이 문제에 대해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쉽게 비난 할 수가 없다.
뉴욕 카네기재단의 2000년 보고서에 '어린이들의 초기 경험은 그들의 현재 생활의 질 뿐만 아니라 향후의 학습및 논리 능력에 영향을 미친다.' 고 발표되었다. 그 이후 아이가 태어나서 처음 삼년이 아기의 일생에서 얼마나 중요한가에 대한 수없이 많은 실험보고서와 그 보고서를 바탕으로 상업주의와 결탁한 교육용품이 얼마나 많은지, 하루에도 두세번씩 찾아오는 유아용 학습지 홍보선생들이며, 은물이니 금물이니 가베니하며 팔고있는 학습도구 등을 일일이 나열하고 얘기하지 않아도 다 아시리라 사료된다.
문제는 서로 일말의 양보도 없이 서로의 주장이 옳다고 내세우지만 그 내용이 서로 대립되는 경우가 많아 과연 어느 편의 말을 듣고 아이 교육방법을 정할지 결정하기가 쉽지 않다. 한편에선 아기에게 충분히 강화된 교육환경을 제공함으로써 지속적인 주변 자극을 통한 학습이 좋다고 하는가 하면 다른편에서는 아기에게 너무 과한 자극을 주게되면 자라서의 학습활동에 방해가 된다고 하는 식이다. 이런 상반되는 이론 속에서 전문적인 지식이 없이 부모가 되어버린 초보 부모들은 아기 양육에 대해 혼란만 커질 뿐이다. 그 중 한가지 이론에 맹신하는 경우라면 조금 사정이 나은 편이다. 일부 부모들은 오늘은 이얘기가 맞는가 싶다가 내일은 또 저애기가 옳은가 맘이 흔들린다. 여러가지 이론이 복합적으로 머리속에 엉켜버려서 아무것도 결정하기가 어려워지는 것이다. 문제는 아이도 부모가 결정한 이론에 따른 서로 다른 교육환경에 노출된다. 아직 어린 아이들에겐 혼란의 가중이다.
이런 상업적 태도들 때문에 상처받는 부모와 아이가 적지는 않을 것이다. 6살이 되면 더이상 영재교육의 가능성이 없고 배우기가 힘들어진다는 협박적인 이론은 듣는사람을 좌절 시킬 정도다. '두살이면 아직 기회가 있네요.' 라고 얘기하는 상담교사는 큰소리로 쫓아버리고 싶을 때가 있다.
내 아이가 훌륭한 사회구성원으로 자라주길 바라는 마음이 없는 부모가 있을까. 사회적인 책임 운운하며 떠안기지 않아도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자식을 잘 자라게 하려는 부모들은 상업주의의 희생물이었다. 자식을 위한 일에 아끼지 않는 것이 미덕이라는 걸 부정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러나 지나치면 부족함만 못하다는 것 또한 부인 못할 진리다.
시간은 흐르고 아이는 자라게 마련이다. 아이에게 부담이 되고 벗어나고 싶은 무리한 학습환경을 자라는 동안 계속 제공 할 것인가, 부모의 욕심을 자제하고 아이에게 스스로 선택할 여지를 얼마나 남겨 줄 것인가는 어디까지나 부모가 선택해야 할 문제다.
결국 중요한 것은 부모 자신이다. 나에게는 아이에 대한 사랑이 있고 아이는 부모에 대한 신뢰가 있다면 아이가 성장하면서 겪게 될 대부분의 오류나 문제점들을 극복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부모자신이 사랑으로 일관된 태도로 양육할 수 있다면 어느 쪽 이론을 따르더라도 아이들은 훌륭하게 자랄것이다. 게다가 영재교육을 받고 수재니 천재니 하고 일컬어 진다고 해서 행복한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