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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인터넷을 보면서 만감이 교차하는 것을 느낀다. 처음 인터넷 홈페이지가 만들어 지던 때를 기억하는
회원들은 아마 비슷한 감상을 갖지 않을까 싶다.
발전적인 모습도 많았지만 개인적으로 어떤 면에선 퇴보하는 기분도 들었다. 각종 이벤트나 행사 때, 혹은 홈안에서의 크고 작은 의견차이가 있는 부분에서 서로에게 양보하지 않고 팽팽한 긴장감이 돌 때 그랬던 것 같다. 모두 슬기로운 분들이어서 길게 지속 되지는 않았지만, 아슬아슬한 느낌을 받았던 것이 나 하나 뿐 이었을까?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가사에만 신경을 집중하고 살다보니 과거에 직장에서의 기억이 희미하긴 한데, 분명히 기억하는 지금과 다른 것이 하나 있다면, 지금보다는 더 여유로운 자세를 가졌다는 것이다. 경제적으로나 생활의 여유로 본다면 차이가 없는데 사람들에 대한 배려로 보면 지금보다는 더 여유가 있었다. 나와 내 일에 이해관계가 직접적인 것이 없어서 였을 수도 있고 지금보다 신경이 분산 되는 일이 많아서 였을 수도 있겠지만.
사전적인 의미로서 "똘레랑스"란, '다른 사람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식의 자유 및 다른 사람의 정치적, 종교적 의견의 자유에 대한 존중'을 뜻하는 용어다. 더 간단히 표현하면 자신과 다른 것을 인정하는 여유라 할 수 있다. 즉, 타인에 대한 "관용"의 정신을 말한다고 볼 수 있다.
서구 역사에서 오랫동안 축적돼온 "똘레랑스"는 지배적 이념(종교나 정치적 이념 등)에 위배되는 이론이나 작품이라 할지라도 공존하고 발전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자세를 일컫는다. 현대에 들어와 정치적 신념이 다르다 해서 국가 등이 특정 사상을 억압하지 않는 것, 인종차별을 하지 않는 것 등으로 의미가 확대됐다.
흑백논리의 반대가 되는 의견으로 예전에 흑백논리가 판을 쳤었고 아직까지도 다양성이 자리 잡지 못한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것으로 생각되는 정신이다. 한마디로 나와 다른 타인의 생각을 진심으로 인정한다는 뜻이다.
나와 다른 사람들을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해 새로운 공존의 방법을 모색함으로서 서로를 이해하고 조화를 이루며 사는 방식을 함께 찾아가는 출발이 되는 것이다. 물론 말처럼 쉽지는 않다.
공정함과 정의에 대한 자기 확신 또한 “한 명의 독재자가 있는 세상을 두 명의 독재자가 있는 세상으로 만들 뿐이다.” 자기 ‘확신’이 적정량의 자기 ‘의심’과 섞이지 않을 때, 그것은 불관용의 또 다른 터전이 된다. 나치즘, 파시즘, 맥카시즘, 스탈린주의는 모두 불순함을 용납하지 못하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철저한 ‘우리’ 의식이 상대방의 개인적 권리를 침해하는 삶의 역설이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더 이상 장렬하게 전사하려는 투지가 아니다. 삶의 역설을 되돌아보고 똘레랑스를 이해할 수 있는 현명함이다.
황희 정승의 일화가 떠오른다. 집에 들어왔을 때 일하는 하인 두 명이 말다툼을 하고 있었는데 황희 정승이 한 사람의 의견을 듣고는 '네 말이 옳다'고 하였고, 상대방 사람도 자신의 의견을 말하자 '그 말도 맞다'고 하여 옆에 있던 사람이 두 사람 다 맞다고 하면 옳은 것이 없지 않느냐고 하니 '그 말도 맞다'고 했다는 일화.
어떤 상황이나 사건의 판단은 개개의 사람에게 속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의견과 생각을 인정하고 수용함으로써 "나", 혹은 "우리"가 한 단계씩 발전해 나아가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