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전도비(三田渡碑)~~!!
병자호란때 청군의 침입에 패배한 조선이 삼전도에서 강화를 맺은 후 청태종의 요구에 따라 그의 공덕을 기린 공덕비로서 1963년 1월 21일 사적 제101호로 지정되었고 원래 명칭은 '대청황제공덕비(大淸皇帝功德碑)'이다.청태조 누루하치의 8번째 아들 청태종 홍타이지 앞에서 인조는 이마에 피가 나도록 땅을 찧으며 3번 절하고 9번 머리를 조아리는 삼배구고두례(三拜九叩頭禮)의 치욕을 당하였으며 후에 병자호란이 수습된 후에 공덕비의 요구를 받아들여 치욕적인 비를 세우게 된다.것도 번번이 비문을 이유로 퇴짜를 맞다 결국 인조의 특명으로 도승지 겸 예문관 제학이던 이경석(李景奭, 1595∼1671)이 지은 비문이 받아들여져 세웠다 하니 그 참담함에 아연할 뿐이다.

백제초기적석총과 지근(至近)거리에 있는 삼전도비는 서울특별시 송파구 석촌동 289-3에 위치한 삼전도비 어린이 공원내에 있다.지하철 8호선 석촌역 6번 출구로 나와 조금걸으면 삼전도비 안내판이 나오는데 그 표지를 찾느라 한참 헤매었다.주민들에게 물어도 삼전도비를 잘 알지 못하였고 삼전도비 어린이 공원이라는 명칭에도 고개를 저었다.
조그만 어린이 놀이터가 눈에 띄길래 그 앞 공인중개사 사무실에 물으니 손짓으로 가르쳐 주시는데 정말 손바닥만한 놀이터 뒤켠에 가려져서 비신의 윗부분을 겨우 알아보니 뭐라고 허탈한 마음 표현할 길이 없다.오히려 놀이터 보다 클성싶은 석촌유치원이 앞에 있으니 차라리 유치원을 물어 가는편이 낫지 않을까 싶은 맘이다.

굴욕의 역사를 상징하는 비라서 2007년 2월 백모씨로부터 병자호란 370년을 맞아 철거해야 한다고 페인트로 훼손 당하는 사건도 겪었다.최근의 안타까운 숭례문 방화나 삼전도비 훼손같은 일련의 문화재 상대 파괴 행위에 대해서 좀더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보호와 유지가 이루어져야 하지 않겠나 싶다.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2007년 6월15일에 훼손된 삼전도비의 보존처리를 완료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어쨌거나 슬픈 역사의 삼전도비를 둘러볼라치면 대리석 재질로서 앞면 왼쪽은 몽고문자,오른족은 만주글자,뒷면은 한자로 새긴 희귀한 예로서 오랜 세월에도 불구하고 명문이 잘 남아있다. 비석 위쪽의 이수(螭首)에는 여의주(如意珠)를 중심으로 두 마리의 용이 화려하게 새겨졌다. 귀부(龜趺)는 17세기 석비의 전형을 보여주는데, 몸체에 비해 머리가 지나치게 크고 비석을 받치는 비좌(碑座)를 연잎 모양으로 새겼다.


인조가 청태종앞에서 삼배구고두례를 행하는 모습이 부조로 새겨져 있다.심하게 손상된 안내판이 부조의모습과 맞물려 씁쓸한 마음이 배가 된다.청에 항복하고 청태종을 찬미하며 침략행위를 공덕으로 칭송하는 굴욕적인 비이지만 외세를 물리치지 못한 우리의 부끄러움,자주국방의 중요성을 깨닫게 하는 따가운 회초리로 교훈삼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