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고기 수육삶기
제주에는 똥돼지가 유명하다.
언젠가 대처에 나갔을때 낯선거리의 먹거리 간판에 "제주산 똥돼지"라고 적혀 있는 식당을 본 적이 있다.
웃음 먼저 터져 나오고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지금은 똥돼지 키우는데도 없을 뿐더러 단지 관광객들의 눈요깃거리로 재래식 화장실을 흉내냈을뿐 철없는 아기들 장난감거리밖에 안된다.
초등 학교때까지만해도 밤엔 특히 화장실 가기가 그렇게 무서웠다.
어둠도 어둠이려니와 통시 아래로 돼지들이 쳐다보는 것 같고 그 요물들이 내 엉덩이라도 물어버리면 어떠랴 하던 시절이었다.
한 낱 웃음거리에 지나지 않던 추억이지만 이젠 돼려 그시절이 그리워진다.
제주도엔 돼지가 큰 재산이나 다름없었다.
집안 대소사를 치르기위해선 한두마리의 돼지를 기르는건 당연시했다.
그것들을 멕일려면 따로 여물을 마련하기도 뭐하고 해서 사람이 먹다 남은 것들을 먹이고 키웠다.
좀 우스게소리로 들릴지도 모르지만 "돗통시"라해서 화장실을 겸해 돼지우리를 만들곤 했다.
돗통시 밑에 깔아놓은 짚이나 마른풀들은 돼지들의 배설물과 섞여져서 삭게 된다.
잘 삭은 짚은 오히려 곡식을 키우는 밭에 밑거름으로 뿌려주면 농사가 잘 되곤 했다.
일석삼조의 효과를 보는 게다.
철모른 육지사람들은 그걸보고 섬지방사람들을 미개인취급하기도 하지만 어쨋든 요즘의 친환경 어쩌구하는 현상으로 따지자면 얼마나 자연친화적인가 말이다.
지금은 똥돼지가 명물이 된셈이다.
한때 천시받던 시절도 있었지만 난 그 시절을 참으로 그리워한다.
어린시절 마을에 돼지 멱따는 궂은 일을 도맡아하는 어른이 동네마다 있게 마련이다.
우리 동네도 명절때만 되면 의례히 '멋물'이라는 동네의 큰 못 한 쪽 구석에선 돼지의 비명소리가 간혹 들리곤 했다.
마을 장정들 몇몇이 잡은 돼지털을 그슬리기위해 불을 피우는 모습이 보일적엔 감히 어린 우리들은 가까이 가질 못했다.
그 곳을 보는 것 만으로도 털이 타는 냄새가 코를 찌르곤 했지.
그래도 그런 날의 밥상은 늘 푸지곤 했다.
돼지의 주인을 중심으로 추렴이 시작되고 집집마다 돌담너머 구수한 고기냄새로 벌써 배가 부르곤 했다.
올 여름 더위는 어떻게 달래볼까 고민하던 차에 얼마전부터 연락이 닿기 시작한 동창 녀석들이 방문한다고 한다.
이 얼마나 반가운 손님들인가.
섬진강이니 지리산이니 도통 나에겐 추억이라기 보다는 낯설기만 한 전라도땅.
이 시골 촌구석으로 귀한 여름 휴가를 온다는 동창들이 너무나도 날 설레게 한다.
제주도 토박이녀석들이라 육지음식을 좀 멕여보내야겠는데..
음식솜씨가 영 젬병이라 온다는 연락을 받은 날부터 뭘 대접해야할지 고민이다.
에라 모르겠다 하고 이름난 식당으로 데려가면 그만일터.
허나 정성이 문제인게다.
고민끝에 그냥 있는솜씨 없는 솜씨 한 번 발휘해 본다고 팔을 걷어부쳤다.
더위엔 우선 기력을 회복해야 할터.
그래 뇌리를 딱 하고 스쳐지나 가는 그림 하나 있으니 그게 바로 어린시절 어머니가 접시 가득 썰어주시던 돼지고기 한 덩이.

우선 장을 보고 와야 한다.
동네 단골 식육점에 들러 돼지고기 한 덩이 산다.
이왕이면 싱싱한 걸로 주십사하고 물건너 섬에서 이십삼년만에 동창들이 쳐들어 온다고 귀뜸해 준다.
인심좋은 아줌시 단골 손님 줄려고 냉장고 깊숙히 숨겨뒀던 고기 한 덩이 꺼내서 인심좋게 잘라준다.
인근 시장에서 대파며 양파 등도 함께 구입한다.
무거운 비닐 가득 옛정을 그리는 마음 또한 그윽하다.

집에 오자마자 된장 풀고 한 소끔 끓여둔 냄비에 넣고 푹푹 삶으니 먹음직 스러운 돼지고기 수육 냄새가 온집안에 번진다.
철없는 아이들은 먼저 먹겠다고 뜨거운 고기 덩이를 바라보며 입맛만 다시고 서 있는 모습이 꼭 어릴적 내 모습일터.
김이 모락모락 나며 대파랑 양파, 마늘이 완전히 익어가며 돼지고기의 구린내를 없애준다.
전라도 시집와서 배운 것 하나는 된장을 푼 물을 한소끔 끓인 후에 고기를 넣어야 비릿한 맛이 없어진다는 것.

영선이 가족들은 목포에서 장시간동안 배를 타고 육지에 내린고 또, 순천에서 마중간 정우가 이곳 골짝마을 곡성까지 올려면 너댓시간은 운전해야할것이다.
얼마나 시장할까.
배멀리도 그러려니와 자동차의 장시간 드라이브로 속은 속대로 안좋을 것인데....
저녁이 다 되어서 도착한 그들을 위해 작은 밥상 하나 차려 놓으니 부끄럽다.
맛있게 먹어주는 친구들이 마냥 고마울뿐.